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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으로 한국땅에 발을 내딛은 사람들~~

by 베남줌마 2025. 5. 2.
결혼으로 행복한 삶~~결혼으로 희망의 삶~~
결혼이란 참 좋은것이다

📖 고향을 떠나는 날

햇살이 따갑게 내리쬐던 그날 아침, 나는 작은 트렁크 하나를 끌고 고향집 대문을 나섰다.
어릴 때부터 뛰어놀던 골목, 저녁이면 연기를 피우던 이웃집 부엌, 그리고 따뜻한 미소를 짓던 어머니의 얼굴이 내 눈앞에 맴돌았다.

"잘 다녀와라. 아프지 말고."
어머니는 내 손을 꼭 잡고 말했지만, 떨리는 그 목소리와 눈가의 번진 눈물은 숨기지 못했다.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시고, 늘 어머니 혼자서 나와 동생들을 키웠다. 그 어머니를 두고 떠나는 길은 발걸음마다 아팠다.

비행기 티켓 한 장이 내 손에 쥐어져 있었다.
한국, 낯선 나라.
나는 그곳에 가서 살아야 한다. 결혼이라는 이름으로, 새로운 가족과 함께.

공항으로 가는 낡은 버스 안에서 나는 창밖을 오래도록 바라봤다.
나무와 논, 작은 시장, 학교 운동장...
모든 것이 어제와 다름없는데, 오늘 나는 이곳을 떠난다. 다시는 예전처럼 돌아오지 못할지도 모른다.

비행기에 몸을 싣고 이륙을 기다릴 때, 두 손은 식은땀으로 젖어 있었다.
설렘보다 두려움이 컸다.
과연 나는 잘 살아낼 수 있을까?
낯선 언어, 낯선 사람들, 다른 문화 속에서.

하지만 마음 한편에서는 작은 기대도 있었다..


📘 한국 결혼이민자들의 삶

나는 고향을 떠나, 낯선 땅 한국에서 새 삶을 시작했다.
사랑을 따라, 혹은 가족의 생계를 위해 선택한 이 길은 생각보다 훨씬 복잡하고 깊은 여정이었다. 결혼이라는 이름으로 시작되었지만, 그 안에는 언어의 장벽, 문화의 차이, 그리고 정체성의 혼란이 함께 있었다.

처음엔 모든 것이 두려웠다.
한국어 한마디도 제대로 못했기에, 길을 물을 때조차 입을 열기 망설였다. 시댁 식구들의 기대와 시선 속에서 “한국 며느리”가 되어야 한다는 부담은 크고 무거웠다.
하지만 사람은 결국 적응하게 되어 있더라. 울고 웃고, 실패하고 다시 도전하면서 조금씩 자리를 잡았다.

아이를 낳고 키우면서는 또 다른 세상과 마주했다.
학교 가정통신문을 해석하려 애쓰고, 한국 엄마들 사이에 끼지 못해 외로운 날도 많았다.
그러나 내 아이가 “엄마 나라”를 자랑스럽게 말할 때, 이 모든 과정이 헛되지 않았음을 느낀다.

많은 결혼이민자들은 이 땅에서 조용히, 그러나 묵묵히 살아가고 있다.
청소 노동자, 음식점 조리사, 간병인, 번역가, 그리고 어머니이자 며느리로서.
어떤 이들은 시민권을 얻었고, 어떤 이들은 아직도 체류 자격 때문에 불안한 하루를 산다.
하지만 공통된 것은, 모두가 ‘소속되고 싶다’는 마음으로 버텨내고 있다는 점이다.

결혼이민자의 삶은 단순한 결혼 생활이 아니다.
이주민이자 여성으로서, 노동자이자 엄마로서 살아가는 ‘복합적인 정체성’의 여정이다.
그 여정 속에서 우리는 더 강해지고, 더 넓은 시야를 갖게 된다.
한국도 점점 이 다양성을 받아들이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언젠가 내 이야기도 누군가에게는 용기가 되기를 바란다.
그리고 내가 선택한 이 길이, 누군가에게는 희망으로 전해지기를 기대해 봅니다.

 

🤝 다문화 공동체의 힘

이 땅에서 나는 외국인이었다.
말도 잘 안 통하고, 문화도 너무 달랐다.
가끔은 사람들의 시선이 무겁게 느껴졌고,
어떤 날은 “내가 여기서 살 자격이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지역 복지관에서 다문화 가족 모임에 초대받았다.
처음에는 망설였다. 낯선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에서 내가 편할 리 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 모임이 내 삶을 바꿔놓을 줄은 그때는 몰랐다.

그곳엔 나와 같은 사람들이 있었다.
베트남에서, 필리핀에서, 태국에서, 중국에서, 우즈베키스탄에서…
모두 다른 나라에서 왔지만, 모두 비슷한 상처와 그리움, 그리고 희망을 안고 있었다.

우리는 서로의 이야기를 들으며 위로를 받았고,
함께 김치를 담그고, 전통 의상을 입고 문화축제를 준비하며 서로의 문화를 존중하고 공유하는 법을 배웠다.
아이들을 함께 돌보고, 병원이나 관공서에 갈 때는 통역도 도와주었다.

그 공동체는 내게 단순한 모임 그 이상이었다.
그곳은 내가 눈물 흘려도 이해받을 수 있는 곳,
내가 누군가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사람이라는 걸 느끼게 해준 곳이었다.

어느 날, 한국인 자원봉사자가 물었다.
“당신들은 그렇게 다르지만 어떻게 이렇게 잘 지낼 수 있어요?”
우리는 웃으며 대답했다.
“우리는 모두, 이곳에 살아남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이니까요.”

다문화 공동체는 한국 사회 속에서 점점 더 중요한 존재가 되고 있다.
언어교실, 요리 수업, 문화교류 행사, 상담지원 등
그 안에는 서로를 향한 연대와 생존의 지혜, 그리고 따뜻한 연민이 있다.

세상은 혼자 살아가기 어렵다.
특히 타지에서, 이방인으로 산다는 건 더더욱 그렇다.
그래서 다문화 공동체는 우리에게 집보다 더 따뜻한 집이 될 수 있다.


📌 요약 메시지:

다문화 공동체는 결혼이민자들이 서로에게 손을 내밀고,
버틸 수 있는 힘이 되어주는 작지만 강한 울타리입니다.
그 안에서 우리는 혼자가 아니라는 걸 느끼게 됩니다.